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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20) 중국의 ‘대국’ 이데올로기, 천안문의 집단 기억을 ‘획일화’하다

by RGCPP-gongbang 2020. 10. 9.

원문 보기: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9291858005&code=960100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20)

중국의 ‘대국’ 이데올로기, 천안문의 집단 기억을 ‘획일화’하다

 

홍지순 | 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 교수

 

집단 기억의 정화

6·4 천안문 민주화운동 31주년인 지난 6월4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이 닫혀 있는 가운데 한 시민이 광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천안문 정면에 걸려 있는 전 국가주석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보인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국민이 ‘우민화’되는 것을 막는
‘문화 안보’의 논리가 설득력 얻어
다양한 기억 발굴하는 ‘풍부화’보다
세세한 기억 지우는 ‘전형화’ 작용
천안문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6월4일에는 매체 검열 더욱 강화

집단 기억이란 개개인들 기억의 집합이 아니며 집단 기억의 일반 법칙은 ‘포함’이라기보다 ‘사장’이다. 집단 기억이 되지 못하고 박물관이나 책장 한 구석에서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 개별 기억들이 겪는 일반적 운명이다. 아울러 많은 학자들은 온전한 의미의 개인의 기억이란 것 자체가 과연 존재하는지 반문해 오기도 했다. 즉 사회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 개인의 기억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지, 더 나아가 기계나 테크놀로지 등이 관여되지 않는 순수한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중국의 천안문을 둘러싼 집단 기억은 공간, 시간, 이미지 등의 측면에서 집단 기억이 어떻게 단순화, 정화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며 집단 기억의 주체를 국가로 설정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에도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이 있을 듯하다.

‘기념비적 공간’은 집단 기억을 재생산하는 중요한 매개이며, 상징성과 정제미를 핵심 미학으로 하는 기념비, 조각물 등은 집단 기억을 정화된 형태로 재현하기 마련이다. 명대에 지어져서 청대에 재건축된 천안문은 자금성을 중심으로 겹겹이 확장되는 베이징 환형 도시 구조의 남북 축 중 남쪽의 정문이었는데, 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 주석이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한 순간부터 하나의 건축물 ‘문’에서 국가 문장이나 화폐 등에 새겨지는 상징이 된다. 천안문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1950~1960년대 천안문 주변 물리적 도시 공간의 대대적 철거 작업과 더불어 이루어진다. 천안문과 대칭을 이루던 북쪽의 ‘지안문’이 사라지고 주변의 담들이 허물어지면서 천안문은 도시의 일부가 아닌 국가의 중심으로 우뚝 선다.

또한 박물관이 되어 시대적, 공간적 ‘뒤편’에 자리 잡은 자금성과 대조를 이루며 천안문은 시대적, 공간적 ‘전면’을 향하는 신중국의 상징이 된다. 천안문 발코니에서 10억 인민이 행진하는 광장을 상상했던 마오 주석의 사후에야 천안문 광장은 비로소 60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광장으로 형태를 갖추게 된다. 광장의 남쪽에는 위치, 방향, 디자인 등에 대한 오랜 정치 논쟁을 거쳐 인민영웅기념비가 지어지고, 동쪽에는 역사, 혁명 박물관, 서쪽에는 인민대회당이 자리 잡아 과거와 현재 인민의 힘이 응집하는 광장이라는 마오 주석의 정치적 비전이 실현된다.

시간의 측면에서 집단 기억은 기념일 등으로 제도화, 의례화되어 응축 재현된다. 해마다 행해지는 10월1일 국경절 군사 퍼레이드를 통해 천안문은 구체적 경험의 공간, 즉 ‘장소’에서 미디어 ‘공간’으로 추상화된다. 인민이 주인공으로 추앙되는 이 행사에 베이징 시민 등 일반인들은 직접 거리에서 관람하거나 참여하지 못하며,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미디어 스펙터클에서 인민은 부재함으로써 중심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 국경절 행사뿐 아니라 중국의 텔레비전 뉴스에서 정렬되지 않은 군중, 회의 중이 아닌 간부를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지난 6월4일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열린 6·4 천안문 민주화운동 31주년 집회에서 한 시민이 1989년 당시 천안문으로 향하는 탱크를 한 청년이 가로막는 사진 ‘탱크 맨’을 들고 있다. 홍콩 AFP연합뉴스

 

집단 기억의 전형화 혹은 공백화를 보여주는 예로, 중국만큼 뚜렷한 경우도 흔하지 않을 듯하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6월4일에는 매체 검열이 더욱 강화되는데 중국 누리꾼들은 이날을 ‘인터넷 보수의 날’ ‘국가적 기억상실일’이라고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영화감독 지아장커는 ‘우리는 굳이 그날을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웨이보 검열이 기억하니까’라고 풍자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정부의 매체 검열이 거짓 광고나 포르노물을 주대상으로 한다고 이해하며 매체 검열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서구에서처럼 매체가 과도하게 상업화하고 선정적 오락물로 전락해 국민이 ‘우민화’되는 것을 막는다는 ‘문화 안보’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어 왔으며, ‘3000여년’의 역사와 14억 인구를 가진 대국 중국을 상대로 몇몇 역사적 시기, 사건 등을 집중적으로 들춰내는 것은 중국의 굴기를 견제하는 서구의 편협한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이와 같은 ‘대국’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기억을 발굴하는 기억의 풍부화보다는 세세하고 복잡한 기억들을 억누르고 일부 사건이나 영웅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억의 전형화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 왔다. 집단 기억은 국가나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이용되곤 하는데 이러한 정치적 사용가치가 강조될 때 집단 기억은 더욱 획일화, 단순화된다.

홍콩에선 해마다 대대적 기념행사
전달되는 기억의 내용뿐 아니라
‘감정의 핵심’ 전달에 주목할 만해
이러한 집단 기억 민간 전수는
‘단순화’보다는 ‘핵심화’에 가까워
집단 기억의 ‘긍정적 정화’ 보여줘

대륙과 달리 홍콩에서는 해마다 6월4일에 대대적 추모 등의 기념행사가 있어 왔는데 이러한 기념일 시위에 참석한 홍콩의 젊은 세대들을 상대로 2013년에 실시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집단 기억의 세대 전수에 대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집단 기억은 가족, 친구, 학교, 대중매체, 인터넷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재생산, 사회화되는데 이때 어떤 내용이 전달되는가뿐만 아니라 내용이 ‘어떻게’ 전달되는가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즉 늘 농담을 즐겨하는 선생님이 이 부분을 강의할 때 갑자기 진지해진다거나 하는 태도의 변화 등으로부터 이 사건은 뭔가 묵직하고 특별하다는 것을 직감했다는 식의 답변들이 많았다. 집단 기억은 내용뿐 아니라 ‘감정의 핵심’도 전달된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을 간접 경험하는 후세대들이 사건을 맥락화하기보다 오히려 사건의 ‘핵심’에 집중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현재 홍콩의 젊은 세대들은 지난 5~6년간 정치 경험을 거치며 중요한 정치 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2013년 6·4 기념일 추모 시위에 참여한 당시의 젊은 세대들은 국가권력이 무고한 시민, 학생을 사살했다는 ‘도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6·4를 중국의 현실 정치 비판으로 연결시키는 정치적 관점이나 경제 성장의 성과로 그 의미를 축소하는 실용적 관점 양자 모두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혹자는 이러한 집단 기억 민간 전수의 특징을 집단 기억의 ‘단순화’라기보다는 ‘핵심화’라고 부르며 이를 집단 기억이 자연스럽게 전수될 때 일어나는 긍정적 패턴이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집단 기억의 정화는 전형화, 획일화일 뿐 아니라 핵심화이기도 하다.

시각 이미지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메모리로부터 독립된 인간의 기억 영역이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천안문에 대한 집단 기억도 ‘구글’과 ‘바이두’ 검색엔진에서 천안문 이미지 검색으로 살펴볼 수 있겠다. 중국의 검색엔진 ‘바이두’에서 ‘천안문’이란 단어로 이미지 검색을 해서 얻는 정갈한 천안문 건물 사진들과 ‘구글’ ‘Tiananmen’ 이미지 검색의 첫 페이지를 지배하는 소위 ‘탱크맨’ 이미지의 대조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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