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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26) 기념은 권력의 몫이고, 기억은 우리의 몫…기억을 법제화하지 말라

by RGCPP-gongbang 202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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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222112005&code=960100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26)

기념은 권력의 몫이고, 기억은 우리의 몫…기억을 법제화하지 말라

 

임지현 |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장

 

부정론을 부정하는 기억

독일은 1904년 독일령 서남아프리카(현 나미비아)에서 헤레로인과 나마 부족을 집단학살했다. 나미비아 제노사이드 희생자 후손들이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2011). 사진 작가 라인하르트 쾨슬러·임지현 교수 제공

 

7년 전 이맘때인 2013년 12월17일 ‘유럽인권재판소’는 논란이 된 판결을 하나 내렸다.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부정론의 법적 처벌이 유럽인권협약 10조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는 1915년 터키 건국의 아버지 엔베르 파샤와 청년터키당의 ‘통일진보위원회’ 주도로 약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된 최초의 근대적 제노사이드였다.

이야기는 2005년 스위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터키의 극우 민족주의 정치인 페린첵은 당시 스위스에서 행한 강연에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가 “국제적 거짓말”이라고 강변했다. 미국과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날조했다는 것이다. 2007년 스위스 로잔 법정은 페린첵의 발언이 인종차별적이라 판단하고 90일 구금 집행유예와 3000스위스프랑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스위스 법정에서 유죄가 확정되자, 페린첵은 사건을 유럽인권재판소로 가져왔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페린첵에 대한 유죄 판결이 유럽인권협약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아,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적 개념으로서의 제노사이드를 1915년의 사건에 적용하는 데 이견을 나타냈다고 해서, 그가 아르메니아 민족에 대한 경멸감이나 증오심을 부추겼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스위스 정부는 유럽인권재판소의 최고법정에 항소했으나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100주년이 되는 2015년 열린 재판에서 최고재판관들은 10 대 7의 다수의견으로 페린첵이 무죄라고 판결했다. 일부 언론은 재판의 내용보다 아르메니아 측 입장을 대변한 변호사 아말 클루니에게 더 관심을 쏟았다.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그에 앞서 2012년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부정론자 처벌을 골자로 하는 행정부의 법령이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소지가 있다고 반려한 바 있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 대륙의 대다수 국가들이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사법 처리하는 데 비추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인권재판소나 프랑스 헌법재판소 모두, 나치의 홀로코스트 부정론과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부정론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부정론과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다르다는 법리적 판단을 드러낸 것이다. 법 일반이 공평한지도 의문이지만, 적어도 ‘기억 법’(memory law)은 공평하지 않다.

2005년 2월 프랑스 의회에서 통과된 메카세라 법(Mekachera Act)을 보면 고개를 더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된 4조 2항은, 해외 특히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 식민주의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고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와 수업에서 이 내용을 의무적으로 반영하라는 것이었다. 국내외의 강한 반발 때문에 결국 이 조항은 철회되기는 했지만, 정치권력이 나서서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부정론을 시민사회에 강요하려 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프랑스에서 “기억의 법제화”는 이처럼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처벌하면서도 식민주의는 미화하는 위선을 떨었다.

독일 ‘아우슈비츠 거짓말 법’

홀로코스트 부정론 처벌하면서
식민주의는 미화하는 위선 드러내
각각의 희생자 역사적 지위 같아져

독일의 ‘아우슈비츠 거짓말 법’은 홀로코스트 부정론 처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세계 최초의 법으로 기억 법의 효시가 되었다. 거기에도 이면은 있다. 독일 제국은 1904년 독일령 서남아프리카(현 나미비아)에서 4만~7만의 헤레로인을 집단학살하고 나마 부족의 절반을 살해한 선주민 말살 전쟁을 펼친 바 있다. 강제수용소, 인종 말살 등 홀로코스트의 장치들이 처음 작동된 것도 이때인데, 홀로코스트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나미비아의 선주민 학살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나 배상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홀로코스트가 식민주의적 폭력의 연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

더욱이 독일의 ‘아우슈비츠 거짓말 법’은 법제화 과정에서 보수파의 지지를 얻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적군과 폴란드, 체코 등에서 피란길에 올랐던 1200만에 이르는 독일인 강제추방 부정론자도 이 법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결과적으로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희생자들과 나치 지지자가 많았던 독일 피란민 희생자들의 역사적 지위가 이 법을 통해 동등해진 것이다.

한국 ‘5·18 역사왜곡 처벌법’

주변화된 대항 기억을 법정서 판단
희생자 코스프레·선전 기회 될 뿐
중요한 건 잊힌 자들의 역사적 복권

과거가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될 때
이는 모든 이를 부정론자로 만든다

5·18 역사왜곡 처벌법을 비롯해 한국의 기억 법을 지지하는 논자들이 자주 말하는 유럽의 홀로코스트 부정론 처벌법은 그런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수천만의 희생자를 낳은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대서양 노예무역, 아메리카 선주민 제노사이드, 스탈린의 정치적 제노사이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한 부정론은 “표현의 자유” 문제이므로 홀로코스트 부정론의 범죄 행위와 다르다는 그런 발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유럽의 기억 법은 우리의 모델이 아니라 “기억의 탈식민화”를 일깨워야 할 계도 대상일 뿐이다.

유럽 기억 법의 실상이 그럴진대, 5·18 역사왜곡 처벌법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5·18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공식 기억은 그것이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이라는 공식 기억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만원의 북한군 ‘제1광수’ 같은 주장이 있다. 포스트 광주 세대인 강상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은 지만원의 역사왜곡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성숙한 대응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준다.

지만원이 ‘제1광수’로 지정한 사진 속 주인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그 주인공이 북한군도 아니지만 5·18민주화운동의 주도 세력도 아닌, 무등 갱생원 출신의 고아 넝마주이며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사살되었다는 잠정적 결론을 관객들에게 이끌어낸다. 가해자나 희생자 모두에게 버림받고 사상자나 실종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김군의 역사적 복권이야말로 역사왜곡에 대한 가장 통렬하고 성숙한 답변인 것이다. 민주화운동으로서의 5·18이 더 깊은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김군”처럼 버려지고 잊힌 광주 ‘서벌턴(subaltern·소외계층)’의 역사적 복권이 5·18 왜곡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극히 주변화된 대항 기억을 주장했다고 해서 역사왜곡죄로 법정에 세웠을 때, 한국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본 연재 17회에서 이소영 제주대 교수의 지적처럼, 왜곡 처벌법은 어빙 재판이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법정 다툼에서 보듯이 희생자 코스프레의 기회를 주거나 법정에 선 부정론자들에게 다시없는 선전의 기회를 줄 뿐이다. 본 연재 24회에서 이철우 연세대 교수가 화두를 던진 법원의 “기관 기억”과 “사회적 기억” 사이의 모순 역시 큰 걸림돌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기억이 법제화되는 순간 과거가 우리의 현재를 망가뜨릴 것이다. 5·18 역사왜곡 처벌법과 같은 논리로 6·25 남침 부정론 처벌법을 제정하자는 논의가 반대 진영서 터져나올 것이다. 이미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천안함 폭침 왜곡에 대한 처벌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바도 있다. 이에 대해 국회 법사위의 수석전문위원은 역사부정론자를 처벌하는 것이 “국가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을 독점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표현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성이 크다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5·18 역사왜곡과 천안함 역사왜곡에 대해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면, 법리의 공정한 적용은 이미 물 건너간다. 모든 정치세력에 공정한 법리를 강조하다 보면, 정치세력마다 자신의 진실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법제화하겠다는 움직임이 일 것이다. 바야흐로 ‘기억 법’의 시대가 열리면, 역사가들은 개점휴업해도 좋다. 역사왜곡 여부에 대한 일차적 판단은 검찰이 맡고, 역사의 최종적 진실은 판사가 결정할 것이다. 검찰과 법원의 “기관 기억”이 과거를 독점하는 순간, “대항 기억”의 공간은 더 위축될 것이다.

과거는 논쟁과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냉전의 포로로 천박한 진영론에 갇혀 있는 한국 사회의 지적 풍토에서 우파는 4·3과 5·18을 부정하고 좌파는 북한의 남침과 천안함 폭침을 부정함으로써, “전 국민의 부정론자화”를 낳을 것이다. 전 국민을 역사왜곡죄로 기소하기 위해서는 검찰조직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커져야 할 것이다. 왜곡 처벌론자들에게 장착된 사지선다형 단세포적 역사관이야말로 검찰개혁의 가장 큰 적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법제화는 부정론을 부정하는 기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부정론자로 만드는 기억의 폭력이다. 부정론을 부정하는 기억은 ‘기억 법’의 천박한 진영론을 넘어, 좌든 우든, 압도적 폭력에 쓰러져간 희생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사회적 기억으로 지키려고 할 때, ‘김군’의 서늘한 눈빛으로 우리 몸에 각인될 것이다. 기념은 권력의 몫이고, 기억은 우리의 몫이다.

※ 그동안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를 읽어주신 독자들과 참여한 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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